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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

1일 1잔디 8개월 회고

wbluke 2020. 12. 9. 21:34

나는 오늘도 잔디를 심는다

9개월 째

기덥마을 박씨 아저씨

기덥마을에 귀농한지 어느덧 9개월 차인 박씨 아저씨는 오늘도 한줌의 잔디를 심는다.
어제도 심고, 오늘도 심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뭔가를 심는다는데...

내 새끼들 잘 자라고 있구만 홀홀

2020년 개인 생활을 돌아보면 큰 화두로 남는 한 가지는 바로 일일커밋이다.
3월 중순부터 알음알음 시작해 어느덧 12월이 되었다.
이에 간단한 회고와 함께 그간 심느라 바쁘기만 했던 잔디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왜 1년도 아니고 8개월 짜리 회고를 하냐고 묻는다면, 아무 이유 없고 그저 만인 회고의 계절, 겨울이 왔기 때문이다.

왜 하고 있나?

일일커밋을 도대체 왜 하고 있는지를 또 묻는다면, 다음과 같은 이유들을 한 번 꼽아보겠다.

  • 슬럼프를 최소화하면서 꾸준히 공부할 수 있다.
  • 지난 날의 행적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 비교의 대상을 남이 아닌 나 자신으로 한정할 수 있다.
  • 지금 내가 잘하는 것, 해왔던 것, 이룬 것, 당장 필요한 것, 나중에 필요한 것들을 수시로 객관화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아래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걸 줄일 수 있다.

이런거 줄일 수 있다

농부의 삶

잔디를 파종한 방법

박씨 아저씨가 심은 잔디의 종류를 간단히 정리해보려 한다.
올 한해 크게는 두 가지 종류의 작물을 심었다.

  • TIL (Today I Learned)
    • 그 날 알게 된 단편적인 개발 지식을 정리
    • 기술 서적 읽고 정리
    • 블로그 글 작성
  • playground (놀이터)
    • TIL에서 알게 되거나 실험이 필요한 지식들을 직접 코드로 구현해보는 실험실 사이드 프로젝트
    • 여러 스터디에서 진행한 내용들 구현
    • 멀티모듈로 추가하면서 진행
  • 그 외 NEXTSTEP 강의 수강 미러(mirror) 커밋 등

올 한 해는 TIL의 분량이 꽤 많았다.
주니어로서 읽어야 하는 기술 서적은 너무나 많고, 더군다나 개인적으로는 책 기반의 학습을 선호하는 학자형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실험실에서 직접 코드로 구현해보고 몸으로 체험하는 일이 개발 잔근육들을 키워주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따라서 앞으로의 방향은 TIL보다는 playground에 더 방점을 둘 예정이다.

다만 당장 내년에도 읽고 싶은 기술 서적들은 널리고 널렸기 때문에, TIL과 playground의 균형을 잘 잡아볼 생각이다.
예를 들어 기술 서적을 읽고 TIL에 정리한 후, 해당 내용에서 궁금한 점이나 눈으로 보고 싶은 점을 playground에서 구현한다.
그리고 구현해 본 내용을 바탕으로 기술 블로그를 작성하는 식이다.

농부가 되어가는 과정

혹여나 이 글을 보며 농부의 꿈을 키우고 있거나 이 삶이 궁금한 분들을 위해, 농부로 정착하기까지의 단계를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7일 ~ 1개월

처음 일일커밋을 시도하는 분들은 이 공부 방법이 자신에게 맞는지 테스트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작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달 정도까지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생각해보자.
작은 목표 기간을 정하고 진행해보면서 적성에 맞는지, 당장 이 답답한 생활을 때려치우고 싶은지를 분간해보면 좋다.
보통 필요한 지식을 이곳저곳에서 빠르게 습득하는 야생형 개발자 분들은 맞지 않는 방법일 확률이 크다.

~ 100일

일일커밋을 제대로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다음으로 처음 100일 동안은 어뷰징을 하더라도 습관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쉽게 말해 마늘이랑 쑥 먹는 기간인데, 가끔 고기도 허용한다는 뜻이다.

다들 잘 알겠지만 한가지 습관을 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일일커밋을 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매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 오늘 하루 잔디를 찍으려면 얼마만큼의 가용 시간 확보가 필요한지 계산하는 것
  • 해당 가용 시간 확보를 위해 다른 일정들을 미리 조절하는 것
  • 실제 그 가용 시간에 내가 잔디를 위한 활동을 실행에 옮기고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것

하지만 습관을 들이는 100일 동안은 위의 과정들을 매일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참 어렵다.
야근을 늦게까지 해서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날, 약속이 있어서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한 날 등 다양한 하루하루의 상황을 마주했을 때, 잔디 찍기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엉망으로 보이더라도 어떻게든 찍고 잘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양심에 찔리더라도 어뷰징을 하면서까지 잔디를 심으라고 말하는 이유는 정말 습관 만들기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만의 공부 패턴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나는 매일 잔디를 어떻게 찍을지 치열하게 고민하지만 사람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100일 그 이후

발 빼기엔 이미 늦었다.

무한굴레

100일 이상 잔디를 심어 온 당신은 이제 잔디를 심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는 궤도에 올랐다.

예를 들어서, 어떤 날 빡세게 야근을 하고 퇴근을 하니 11시가 넘었다.
내게 주어진 가용 시간은 4~50분... 인데 너무너무 피곤하다.
이 상황에서 다음과 같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오늘 12시까지만 어떻게든 힘내서 찍고 잔다는 선택과 오랜 기간 이어온 잔디의 맥을 끊는다(?)는 선택.
심지어 오른쪽의 선택지는 날이 갈수록 무게가 커진다.
어떤 상황에서도 꾸준하게 한 가지 일을 밀고 나갈 수 있는 훌륭한 자기 제어 장치가 생긴 셈이다.

추천사와 당부의 말씀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마음의 동기가 생긴 분들에게(정말?), 아니면 이제 막 조금씩 잔디를 심고 계신 분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 마무리하려고 한다.
일상에 치이는 나 자신에게 늘 되새기는 말이기도 하다.

요로코롬 작게 심어도 괜찮다

양과 질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다.

어차피 매일 잔디를 심다보면, 자연스럽게 어떻게 하면 내 생활 패턴 안에서 잔디의 질을 높일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된다.
억지로 양과 질을 높이려고 애쓰기 보다는, 꾸준한 기조 안에서 내 컨디션에 맞게 하나씩 달성해나가는 게 좋다.

보통 슬럼프가 오게 되는 계기는 그동안 내가 이루어왔던 노력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거나, 미래에 해내야 하는 일에 대한 부채감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일일잔디는 시각적으로 찍히는 잔디와 삶의 꾸준한 사이클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상황에 의한 슬럼프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또한 수시로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역할 중 하나다.
단기적인 하루하루의 계획 뿐 아니라 큰 중장기적 플랜 안에서 분기별, 반기별 계획과 실천을 현실화할 수 있게 도와준다.
다시 돌아보니 마치 탑다운 방식과 바텀업 방식을 수시로 전환하면서 개발하는 모습과 꽤 많이 닮은 듯 하다.

물론 장점만 있는건 아니다.
어떨 때는 잔디로 치환하기 힘든 성격의 과제를 억지로 잔디로 전환하느라 필요 이상의 시간을 쓸 때도 있고, 정확히 내가 뭘 성취하고 싶은지에 대한 큰 그림이 없다면 방향성이 없는 무의미한 노력이 되어버릴 여지도 존재한다.
이런 고민들에 대한 답은 각자 자신만의 농사 방식을 만들어가면서 정의하면 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누가 내 잔디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평가할 것도 아니고, 자기가 만족하고 기분 좋으면 된 것 아닐까.

회고라 쓰고 추천하는 내용으로 마무리가 되어버렸지만, 많은 분들이 한번쯤은 시도해보셨으면 좋겠다.
이렇게 글 쓰는 나도 언제까지 해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은 만족하고 있으니 1년까지는 꽉 채워보고 그 다음 1년을 계획해 보아야겠다.

모두들 풍년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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